숲의 모순, 보전과 활용


  숲에 대한 하나의 생각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부터 숲을 온전하게 지키자는 생각이다. 지구별의 대부분을 사람들이 차지하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은 현실에서, 숲이라는 공간만이라도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을 위한 삶의 공간으로 남기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숲 속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사람의 손을 대지 말자는 것이고 보니, 숲을 찾은 사람들이 앉아 쉴 만한 시설이나 인공적인 산책로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기도 한다. 한때 온 나라를 뒤덮었던 숲이 사라진 것도 이런저런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였으니, 지금 인간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숲에 인위적인 변화를 준다면 그나마 남아 있는 숲을 훼손하게 될 것이 아닌가? 이런 의견을 가장 충실히 따르자면 사람은 숲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생각이 있다. 숲을 인간의 이익에 맞게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숲은 자연이 인간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선물이다. 이전 시대에 숲은 개발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숲은 자연의 치유력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마지막 휴식 공간이다. 결국 숲을 보전하는 것도 사람을 위한 것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숲의 소중함을 직접 느낄 수 있어야 숲을 지키고 가꾸는데 사회적인 비용을 지출 할 수 있다. 이렇게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하다 보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 숲을 찾게 될 것이고, 숲은 본래의 모습을 조금씩 잃어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숲에 대한 생각은 전형적인 모순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숲을 지킨다는 것에 가치를 두면 아무래도 활용도는 떨어질 것이고, 인간들이 숲에서 어떤 혜택을 얻으려 애쓸수록 숲은 더 훼손될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똑같이 생태적인 보전을 고민하더라도 지구별의 모든 식구들을 중심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식구들 중에서도 우리 자신인 인간을 중심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일 수도 있다. 또 다르게 보자면 보다 원칙적인 생태주의와 실용적인 생태주의를 두 의견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에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 풀과 나무사이로 등산로가 생기고, 흙이 노출된 등산로가 빗물에 쓸려 파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파이기 시작한 땅에 물길이 한번 나면 물이 모여 흐르면서 심각하게 땅이 파이고 숲이 훼손되는 일도 더러 있다. 그 모든 변화가 사람들이 밟고 다녔을 뿐인 길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면 사람이란 존재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찾으면서 생기는 산림 훼손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앞의 두 가지 생각은 또 다시 극명하게 대립한다. 사람들이 숲을 찾는 것을 최소화하자는 의견과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오고 가더라도 숲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나무 테크와 같은 구조물을 갖추자는 의견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구조물은 과연 숲을 해치는 문명의 창일까? 아니면 숲을 활용하면서도 피해를 막아주는 방패일까? 숲의 보전과 활용이라는 모순 속에서 미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선은 과연 어디일까?

                    
                                                            박범준 제주 바람도서관장       

                                                            2009년 4월 15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