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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포기해야 통일이 온다


#장면1: 초등학교 때 달력에 나오는 스위스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반해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품었던 스위스에 대한 동경은 세계 지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는 중학교 때 무너진다. 스위스는 국토가 산지로만 되어 있고 해변이 없어 답답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장면2: 반세기 만에 상봉한 남북 이산가족의 노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대화를 나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지?” “어서 통일이 되어야죠”“그래, 통일이 될 때까지 꼭 살아있어야 돼!”

  이 두 장면은 서로 무관한 듯 싶지만 실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단적으로 말하면 둘 다 지극히 ‘한국적’인 관점이며, 그런 만큼 세계사적 보편성에서 유리되어 있다. 쉽게 말해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이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정치적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한반도라는 자연적 경계안에서 비교적 동질적인 역사를 유지해온 우리는 막연히 다른지역, 다른 민족도 우리와 비슷하리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늘 정치적 구분에 지나친 비중을 두는 데 익숙해진 우리 역사의 특수성이다.

  스위스는 국가라는 정치적 단위로 보면 물론 해안이 없지만, 스위스 사람은 아무런 제약없이 북쪽의 독일이나 프랑스를 거쳐 북해나 발트해로 나갈 수 있고 남쪽의 알프스를 넘으면 지중해로 갈 수 있다. 해안이 없는 스위스의 국민들이 답답해하지 않는 이유는 해안이 없는 충청북도의 도민들이 답답해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정작 답답한 것은 국경선도 아닌 휴전선에 막혀 육로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우리다.

  세계 대다수 나라의 국경은 우리의 휴전선처럼 엄중한 철책으로 방비되고 상비군이 주둔하면서 지키지 않는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현대 세계지만 사실 이웃한 나라끼리 국경선이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는 지역은 많지 않다. 더구나 60년 동안 전쟁이 없으면서 소모적인 적대관계로 일관하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수백 년 뒤의 역사 교과서는 지금의 상황을 황당하다고 볼 게 뻔하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학교에서 ‘통일은 왜 필요한가?’ 라는 숙제를 내준 적이 있었다. 아이가 자문했을 때 나는 여느 부모처럼 몇 가지 사유를 말해주었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하나의 나라로서 같은 역사를 지녀 왔다. 언어도 똑같고 같은 핏줄을 가진 한 겨레다. 또 통일을 이루면 긴장관계가 해소되고 국방비가 적게 든다. 하지만 아이에게 받아 적게  하면서도 나는 그 점들이 과연 통일의 필연적 근거가 되는지 의아스러웠다.

  세계 전체를 놓고 보면 1민족 다국가나 다민족 1국가는 드물지 않다. 언어와 역사와 문화가 같아도 얼마든지 몇 개의 국가로 나뉠 수 있으며, 다문화나 다민족이 연방 국가를 이루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처럼 ‘국가’라는 정치적이고 인위적인 구분이 삶의 총체적 흐름을 가로막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나라를 이루는 상태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통일보다 앞서는 것은 적대의 해소와 교류다. 남북한이 통일을 지향하기보다 아예 별개의 국가로 분립하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 된다. 휴전선을 선린의 국경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분단을 고착화하지 않겠느냐고? 그렇지 않다. 오히려 통일을 앞당기는 방책일 수도 있다. 모두가 원한다면 그대로 가도 좋고 나중에 여건이 숙성되었을 때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해도 좋다.

  그러자면 우선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는 헌법 제3조부터 삭제해야 한다. ‘세 끼 걱정 사회주의’ 같은 대통령의 생각 없는 발언은 ‘외국’에 대한 부당한 폄하가 되므로 금물이다.

  또한 그 말에 필요 이상으로 발끈하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장관이 논문표절 같은 파렴치한 혐의에 연루되는 남한의 통일부는 함께 해체해야 한다.

  ‘개국 이래 수천 년 동안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살다 1948년부터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후대의 역사 교과서에 기록될 이런 문구는 전혀 수치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정작 수치스러운 대목은 ‘그 뒤 수십 년간 남북한 양측은 서로 반목과 적대로 일관하면서 교류와 왕래조차 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될 것이다.

                                                2009년 2월 26일자 중앙일보

                                                중앙시평  남경태 역사 및 철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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